마리스텔라커피 르완다 기행(1)



르완다 커피가 아닌, 르완다의 사람들을 만나다.

마리스텔라커피 르완다 기행(1)

3년 전, 아프리카 르완다를 다녀온 적이 있다. 커피 산지를 방문하기 위해 미리 예정된 약속없이 직접 부딪혀가며 커피농장과 커핑랩을 방문해서 르완다와의 다이렉트 트레이딩을 시도했다. 그 곳에서 도움을 받은 한인선교사분들과 각종 기업쪽과 대사관측 분들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한국분들과 친해지면서 르완다는 나에게 친구의 나라처럼 익숙한 곳이 됐다.
4년 전쯤 사람답게 더불어 살고 싶은, 그런 충동이 일어나는 기간이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독거노인을 돕거나 베트남 고엽제 피해를 입은 장애인을 돕는 등, 나눔을 생활하며 살던 시기도 있었지만, 막상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살기 바쁜 삶을 살아온 것이 불현듯 부끄러워지던 나날들이 있던 시기였다. 이 때 만난 것이 국제 구호단체였고 단순히 물을 정화시켜주거나 우물을 파주는 단체라는 생각이 들어 후원을 결심하게 되었다. 커피를 하다 보니 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물조차 깨끗이 먹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가늠할 수도 없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일이 나에겐 운명적인 일로 찾아왔다. 시작은 한 통의 메일이었고 후원자 대표를 뽑아 아프리카 르완다의 구호현장에 같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후원한 단체가 왜 아프리카에서 구호활동을 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고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커피를 하며 커피 산지를 다녀온 경험으로 좋은 커피를 찾아 그 가치를 인정하여 대가를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몇몇 농장주를 알게 되면서 커피를 수확하는 농부의 자녀들을 돕거나 과테말라 화산폭발같은 자연 재해에 기부하면서 그런 일들이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르완다에 커피가 아닌 다른 삶이 많이 존재하고 그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커피가 아닌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그들의 삶을 보고 싶고 알고 싶어졌다.
단순히 우물을 파주는 봉사단체라고 생각했던 곳이 자연재해나 내전으로 인한 난민의 긴급구호와 경제개발,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되자 기분이 정말 이상해졌다. 왜 나는 모든 커피산지국이 커피만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또 다른 삶을 살펴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최근 케냐 커피가 맛이 떨어진 것에 비해 값이 올랐을 때, 이 단체는 케냐의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재해민들을 돕고 있었고, 과테말라 화산폭발의 재해 현장에도 긴급 투입이 됐으며 최근 인도네시아 슐라웨시의 지진 및 쓰나미 피해현장에도 파견되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재건하고 있었다. 그 모두가 커피를 생산하는 커피산지국들이었고 커피도 이들 나라의 상황과 밀접한 것을 비로소 알게 되어 부끄러운 심정이었다. 또한 콩고의 여성들에게 양봉기술을 가르치거나 낙농업을 할 수 있는 곳에는 젖소를 지원하는 등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후원자 대표를 뽑는 자리에 인터뷰를 하면서도 제대로 알지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기가 어려웠었는데 최종 1인에 뽑혔다고 했을 때는 무거운 사명감이 어깨를 누르는 느낌이었다. 좀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런 단체를 알게 되었나? 이렇게 되려고 커피를 했었는가? 심각하게 고민이 들기도 했다.



르완다까지 약 20시간이 걸렸다. 비행기에서 눈을 뜨면 밤이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르완다는 3년 전처럼 자동차 매연이 가득하고, 황토 위를 마른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씩 문명이 유입되면서 높아진 건물과 조금은 세련된 사람들도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르완다의 북쪽과 서쪽, 남쪽의 제일 끝 산간지방으로 가서 보았을 때 3년 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진 황토의 땅 위로 나무 땔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사람들과 여러 개의 물통을 자전거에 매고 가거나 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들 등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이 높고 낮은 구릉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가장 먼저 르완다의 국제구호단체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팀의 리더인 패트릭 밑으로 긴급구호팀, 여성인권팀, 펀딩팀, 홍보팀이 현장의 팀들과 연계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첫날에는 파인애플 농장을 방문했는데, 파인애플은 경사진 산 비탈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아주 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농부들이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처음에는 소작농이었던 여성들이 구호단체에서 조합을 만들어 주면서 조합을 통해 돈을 빌려 대규모 ‘뚜자무라네’ 라는 농장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이후 파인애플값이 세배로 뛰었다고 한다. 유럽의 한 후원자의 아이디어로 건조 파인애플을 만들 수 있도록 구호단체에서 지원을 했고, 수출까지 판로를 만들어 주면서 이제는 10배 이상의 가치가 생겨 그 전에는 꿈도 못꾸던 의료보험이나 저축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남편도 부인의 경제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같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가득차 있었다.




둘째날에는 부룬디 난민들이 있는 르완다의 마하마캠프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황토였던 흙길이 점차 까맣게 변했고 바람에도 흙먼지가 가득했다. 놀라운 것은 가는 길에 보이는 계곡 물마저 황토물이었다는 것이다. 저 물은 마시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고, ‘빨래는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마저 들었다. 부룬디 난민캠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총을 들고 검열하는 군인들이 보였다. 들어서자 반겨주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구호단체에서 운영하는 물 정수처리 시설부터 보러 갔다. 르완다를 감싸고 있는 국경이 되는 큰 강으로 이동했는데 강 왼쪽으로는 탄자니아가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부룬디가 보였다. 저 넓은 강을 건너 3년 전에 부룬디 사람들이 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구호단체에서는 누런 황토물을 끌어다 가라앉히고 모래필터에서 정화하는 물리적인 정수를 한 뒤 본격적인 화학적 정수 처리 후에 각 가정에서 200미터 이내에 있는 물탱크로 물을 보내고 있었고 매일 수질검사를 체계적으로 하는 과정 또한 보여줬다. 5만 8천여 명의 난민들은 그 덕분에 1인당 하루 20리터의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학교와 병원, 도서관 등에도 체계적으로 물을 공급받고 있었다. 특히 병원에서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면 그에 맞는 살균수를 제공한다고 했다.
엄청난 정수 시스템을 본 뒤 난민 어린이들을 만나러 갔다. 어린이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먼 길을 넘어서 낯선 나라로 오던 그들의 두려움과 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강을 건넜을 부모들의 먹먹함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앞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들의 미소가 눈부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낯선 이방인의 갑작스런 눈물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나를 안아주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힐링을 받으며 오히려 내가 여기 태어나서 이 아이들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을 수도 있었던 아픔을 이 아이들이 받는 듯 해 미안하고 힘든 마음이 들었다. 부디 제대로 공부하고 기술을 익혀 지금은 부룬디 국민도 르완다 국민도 아닌 이 아이들이 자립을 잘 했으면 하는 무겁고도 간절한 마음을 안고 난민캠프를 떠나왔다.




난민캠프 주변 마을에도 이 구호단체의 물탱크가 곳곳에 있었다. 특히 근처 르완다 학교에서는 7세부터 24세까지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교육을 하는데 교사만 3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곳도 구호단체가 물탱크를 세우고 수도를 설치해주어 아이들이 멀리 물을 뜨러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마침 고장이 난 수도가 보였고 나는 선의의 마음으로 그것을 고쳐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관계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정기부는 우리나라 분들이 많이 원하지만 실제로는 행정절차에 더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구호단체로 직접 기부를 하면 더 급하고 긴급한 곳에 배분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순간 공항에서 만난, 후원하는 아이들을 보러간다는 어르신들이 떠올랐고 그때 ‘그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던 마음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그분들처럼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을 잘 몰라서도 그랬겠지만, 본능적으로는 후원 단체에 기부하기보다 지정 기부가 맘이 편하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던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부끄러워졌다. 다시 먼지 바람이 부는 까만 흙길이 가득한 국경지역을 벗어나며 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3월호(206호)에서 '르완다 기행 (2)'로 이어집니다.

자세한 내용과 전체 이미지는 월간 <커피앤티> 1월호(204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