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카페 만들기 프로젝트(1) - 일본 카페문화의 시작과 발전과정



100년카페 만들기 프로젝트(1)_프롤로그

‘장수카페’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토양
일본 카페문화의 시작과 발전과정


우리나라의 커피문화는 1978년 수입자유화를 계기로 빠르게 확산됐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짧은 기간 동안 기술적 발전을 이룩했고, 공급확대와 함께 수요 면에서도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왔다. 글로벌시대에 맞춰 다른 나라의 커피를 직접 보고 느끼고자 하는 전문가들도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정보와 트렌드를 얻기 위해 해외의 커피산지를 찾아나거나 커피전문점들을 돌아보는 ‘커피투어’가 보편적 현상이 됐다. 우리보다 앞서 커피문화의 꽃을 피운 일본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그들의 역사와 기술을 파악하고 문화를 접하기 위해 많은 커피인들이 일본의 유명 커피집을 돌아보며 커피를 맛보고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한국 커피시장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해마다 많은 커피전문가들이 한국을 찾는다. 국내 카페의 인테리어를 엿보고 비즈니스 방식을 살피기 위함이다. 커피 관련 전시회를 관람하거나 시내 곳곳의 카페를 둘러보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우선 국내 커피전문점의 규모와 화려한 인테리어에 놀란다. 동시에 서울의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카페들을 보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한다. 과거에 일본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 커피시장 역시 너무 많은 카페가 너무 짧은 시간에 늘어난 것 같다고 진단한다. 포화와 정리의 길을 걸었던 일본의 ‘아픈 과거’가 한국에서 다시 재현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일본 커피전문점 시장은 지난 1990년 전후를 정점으로 조정기를 거쳤다. 한 때 15만 개에 달했던 카페 숫자도 그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하면서 전국 커피전문점 수 역시 감소세로 돌아선 상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문을 닫는 커피집이 속출하고, 개점휴업 상태인 곳도 점점 늘고 있다. 창업수요는 줄지 않는 반면, 가파르게 오른 임대료와 인건비, 각종 규제 등 카페 운영자들에게 불리한 여건들이 발목을 잡는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이 겪었던 폐업도미노와 비슷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커피전문점이 레드오션을 넘어 영세자영업자들의 ‘무덤’으로 전락한 거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명성을 더해 온 카페는 있다. 일본에는 100년을 훌쩍 넘긴 ‘파우리스타’를 비롯해 30년 이상 된 커피집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난해 60주면을 맞이한 ‘학림다방’을 필두로 해서 20년 가까이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카페가 적지 않다.
그 비결은 뭘까?
그들은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명맥을 유지하고 보전해 왔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20년 이상 이어 온 일본의 전통적 장수카페 20곳을 선정해 매월 한 곳씩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과정에는 직간접 취재와 자료조사를 중심으로 일본의 유명 개인카페를 하나씩 다루되. 국내 커피인들의 평가와 조언을 곁들임으로써 객관성을 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일본의 커피산업과 카페문화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장수’를 위해서는 창업자나 경영자의 ‘내공’이 필수요건이지만,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민족성과 개성, 주변환경 등 외부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커피 스타일과 문화적 배경, 역사적 흐름에 대해 살펴본다. 



일본식커피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일본식커피가 뭐에요?”라고 묻곤 한다. 필자는 일본식 커피를 한마디로 “다양성이 공존하는 커피”라고 얘기하고 있다. 다양한 추출방식을 통해 일본의 전통적 식음료 문화와 새로운 현대식 스타일이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어우러지면서 다양하게 공존하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커피는 약배전에서 강배전까지 폭넓은 로스팅 기법과 다양한 기구를 이용한 추출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8년 독일의 메리타부인이 고안한 메리타필터가 보급된 이후로 일본에서는 다양한 추출도구가 개발되었다. 그와 동시에 보다 섬세한 추출기술과 로스팅기술을 추구하며 커피인들에 의한 커피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이것은 일본의 커피문화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실제로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자가배전카페, 핸드드립전문점, 원두판매전문점, 에스프레소바, 서드웨이브스타일 등 다양한 형태의 커피전문점이 존재한다.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거나 국내에서 기존에 알려져 있는 일본의 커피스타일은 진하고 쓴 커피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독창성과 깊이 있는 맛을 추구하는 일부 커피장인들의 경우 강배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라고 강배전 커피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로스팅의 관점에서 커피를 분류해 본다면 약배전, 중배전, 중강배전, 강배전의 4타입으로 나눌 수 있고 각각의 타입은 맛의 기준이 존재한다. 
 (사진: 로스팅 4단계/ 왼쪽부터 약배전, 중배전, 중강배전, 강배전)

커피 로스팅애서 약배전은 대개 첫 번째 클랙에서 두 번째 클랙 전에 배출한 것으로 과실과 같은 긍정적 산미가 주체가 된다면, 중배전은 두 번째 클랙이 직전에 배출한 것으로 은은한 긍정적인 쓴맛과 함께 밝은 산미가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중강배전은 두번째 클랙이 시작되고 일정시간이 경과한 후에 배출한 커피로 절도 있는 쓴맛과 함께 은은하고 밝은 산미가 함께 어우러지며 중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강배전이다. 일반인에게 강배전은 “쓰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데, 일본에서 숙련된 기술을 연마한 커피장인이 만드는 강배전 커피에서는 스페셜티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다크초롤릿과 같은 긍정적 쓴맛과 함께 과실과 같은 신선한 산미, 그 원두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허브와 꽃향기, 스파이스의 향미성분이 복합적으로 표현된다. 일본의 커피 중에 강배전 커피의 맛을 정하는 기준은 굉장히 섬세한 면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강배전이라고 불리는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부정적 쓴맛이나 꼬릿한 향미는 아주 미세한 부분일지라도 오버로스팅으로 인식된다. 만일 약배전부터 강배전까지 로스팅의 폭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그 커피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소비자에게 더욱 더 폭넓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커피가 소개된 시기
커피에 관한 지식은 18세기 말경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 아라비아와 서양에서도 의학자들을 중심으로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서 알려지게 된 것처럼, 일본에서도 커피가 가지고 있는 약효에 주목하게 되어 처음에는 음용보다는 지식으로 커피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커피에 관한 지식과 함께 네덜란드인이 가지고 온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셨는데, 차에 익숙한 당시의 일본인에게 있어서 커피는 편하게 마시기 어려운 음료였다.  
그 후 커피생두가 일본으로 유입되었지만 커피를 볶는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쓴맛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네덜란드 정부에서 일정량을 볶은 다음 가루로 만들어 병이나 캔에 담아서 일본으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커피는 나가사끼에 상주하고 있던 네덜란드인과 일부 일본인들이 마셨다. 
이 무렵 일본의 기생들이 네덜란드인으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 “커피깡”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커피포트를 가리키는데, 이미 이 시기에 일본인들도 커피를 직접 내려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커피는 나가사끼에 상주하는 네덜란드인과 주요 직책을 맡고 있었던 일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을 뿐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당시 나가사끼를 출입하는 일본인을 제한하는 막부의 정책에 따른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 시기의 일본인들은 차를 주로 마셨다. 때문에 일반인의 정서에는 커피가 아직은 일상의 음료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차츰 일반인에게 커피가 전해지면서 커피로스팅과 커피추출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일본 최초의 카페 “가히사깐 加否茶館”
일본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카페는 1888년 도쿄 시모타니 니시구로몬쵸 2번지(현재 우에노히로코 지역) 부근에 테이에이케이 (鄭永慶)에 의해 개업한 ‘가히사깐(加否茶館)’이라고 알려져 있다. 
테이에이케이(鄭永慶, 1859~1895)는 대대로 중국어 통역관 집안으로 어릴 적부터 가정교육을 받아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3개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1874년에 미국의 엘대학으로 유학을 갔지만, 1879년에 신장병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귀국을 하게 된다. 건강이 회복된 후 외무성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학위가 없어 그 이상의 관직에 오를 수 없게 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오까야마사범학교(현 오까야마대학) 교사가 되었다. 그후 도쿄의 대장성(재정경제부에 해당)의 관료가 되지만 이곳에서도 학위가 없어서 그 이상의 승진을 하지 못한 채 1887년에 퇴직하게 된다. 
같은 해 니시구로몬초에 있던 부모의 저택이 화재로 불에 타서 1888년에 서양식 2층건물을 신축했고, 자금문제로 꿈이었던 학교 대신 커피점을 들여 개업했다. 그것이 일본 최초의 커피점인 가히사깐이었다. 해외 유학파인 테이에이케이는 대중들이 지식을 통해 교류를 할 수 있는 사교공간을 만들고자 했는데, 가히사깐이 추구했던 것은 ‘지식을 공통으로 배울 수 있는 장소’ 였다.
건물 1층에는 당구대와 신문, 잡지, 트럼프, 바둑 등이 구비되어 있었고, 2층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커피, 주류와 함께 음식류도 제공되었다. 가히사깐에서 커피 한 잔이 소바 한 그릇에 달하는 금액으로 제공되었는데, 당시의 일반인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이 때문에 가히사깐은 경영난에 부딪혔고, 개업 4년 후인 1892년에 폐점을 하게 되었다. 
테이에이케이는 미국으로 밀항을 해 씨에틀에서 살았지만, 1년 후 병으로 37년간의 짧은 생을 마쳤다. 하지만 가히사깐의 영향으로 일반인들에게 커피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890년에는 다이아몬드커피점, 후우게쯔도우(風月堂), 기무라야빵점깃싸실(木村屋パン店の喫茶室) 등이 생겼고, 뒤이어 카페 프랑땅, 카페 파우리스타가 잇따라 개업을 하여 일본의 카페문화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가히사깐이 오픈한 해부터 120년 후인 2008년 4월 13일 기념비를 건립하게 되었고, 가히사깐의 오픈 기념일인 4월 13일이 ‘깃사땡(찻집)의 날’로 제정되어 있다.  



가히사깐 이후의 일본 카페문화
메이지 말경이 되어 일본의 카페스타일은 미국식 스타일과 프랑스 스타일의 카페로 발전을 하게 된다. 커피와 소프트드링크를 제공한 다이아몬드커피점, 풍월당, 시세이도파라, 그리고 1911년에 브라질커피의 보급을 위해 긴자에 개업한 카페 파우리스타 등이 대표적인 미국식 카페로 손꼽힌다. 요리와 알코올을 제공한 프랑스식 카페로는 1911년에 서양화가 마쯔야마 쇼조가 오픈한 카페프랑땅이 있었다. 현재는 여러가지 형태의 스타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당시 일본 카페문화의 배경은 이 두가지 스타일을 중심으로 기반이 형성되었다.  
커피는 가히사깐 이후로 도시의 일반인들에도 보급되어 커피와 주스를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밀크홀’이 1897년에 탄생했고, 1923년 관동대지진 전까지 전성기를 유지했었다. 밀크홀의 매장 안에는 평범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우유, 커피, 도너츠 등의 빵류를 판매하는 서민적인 공간이었다. 규모는 5평 정도에서 대규모까지 다양했는데, 대표적인 밀크홀은 아사쿠사의 ‘하토야’로, 하루 2000잔 이상의 커피를 팔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깃사땡(찻집)붐’이 일어났고, 1937년경에는 도쿄에만 2,600점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더욱 폭넓게 알려지게 되었다. 

브라질커피와 카페 파우리스타
일본의 커피역사에서 일반 서민들에게 커피를 보급한 인물로 가히사깐을 창립한 테이에이케이와 함께 카페 파우리스타를 창립한 ‘미즈노료우(水野龍)가 꼽힌다. 이 두 사람은 일본의 커피문화 발전에 공헌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커피생산량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브라질커피의 발전은 일본의 근대사에서 미즈노료우에 의해 진행된 브라질 이민정책과 매우 관계가 깊다. 
미즈노료우는 젊은 시절뷰터 일찌감치 사업가로 나선 일물이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브라질 현지의 커피 재배사정을 조사하는 한편, 산파울로 주정부와의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커피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커피가 일본인에게 적합한 사업이라고 판단한 그는 귀국 후 ‘황국식민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주 업무는 이민단을 통해 일본인 이민자들을 브라질로 보내는 일이었다. 이민자들은 주로 산파울로 인근의 농장에서 커피 재배와 가공생산에 투입되었다.
브라질 정부는 미즈노료우의 공적에 대한 보답으로 매해 1500섬의 커피를 5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하고, 브라질 커피의 보급을 위해 그에게 판촉을 위탁했다. 브라질커피의 소비확대가 브라질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봤던 그는 1912년 산파울로주청 전속으로 브라질커피판매소라는 합자회사를 세웠고, 다음해인 1913년에는 주식회사 카페 파우리스타를 설립, 브라질커피 보급과 홍보마케팅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창업 직후 카페 파우리스타는 무섭게 성장했다. 도쿄와 전국 주요 도시에 26여점을 세웠고, 총 종업원이 2천명 이상에 달했다. 각 지점은 브라질커피에 맞는 추출방식을 적용하는 한편, 도넛츠 한 개(5전) 가격과 같은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판매했기 때문에 젊은이들로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 이 때문에 ‘긴자에서 브라질커피를 마시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걷는다’는 의미로 ‘긴부라(銀ブラ)’라는 말이 유행되기도 했다. 이처럼 파우리스타는 빠른 시간에 커피가 대중 속으로 다가가고 일본 전국으로 보급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커피가 일본인들의 일상이자 생활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게 되었다. 



1923년 브라질커피의 무상제공 기간이 끝나고 얼마 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났다. 요코하마와 도쿄의 지점들이 막대한 피해를 당했고, 결국 1923년과 1924년에 각 점포는 각각의 경영책임자나 공동경영자에게 양도되어 직영에서 분립영업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카페 파우리스타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지만, 도쿄 긴자에 세운 본점은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인본 카페문화의 자부심과 역사적 상징이자 명소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195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1942년부터 전쟁으로 인한 커피의 수입통제, 그리고 1950년의 수입재개가 되기까지 이 시기를 일본 카페의 암흑시대라고 불린다. 1950년대 이후 일본인들은 불충분한 생활환경에 놓이게 되었고, 그에 따른 문화적 욕구를 카페를 통해 채우고자 했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카페가 등장하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BGM을 이용한 클래식카페, 재즈카페, 가성카페 등이었다. 이와 함께 도서카페, 산장카페 등 다양한 형태의 카페가 생겨났다. 
1970년경에는 ‘커피전문점붐’이 일어났는데, 이곳에서는 각 산지별 커피를 사이폰이나 핸드드립으로 추출해서 제공했다. 커피에 포커스를 두고 커피만을 제공하는 커피전문점은 일본에서 발생한 독특한 카페스타일이다.  



이러한 커피전문점은 특별한 조리기술이 필요치 않고, 인테리어 등의 설비비용이 크게 들지 않기 때문에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카페 개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일본 전국의 커피전문점의 수가 15만 곳이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경제 이후 경제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한 데다 레스토랑이나 그 밖의 요식업에서도 커피를 취급하고 있어서 경쟁이 치열했다. 여기에 건물의 임대료와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많은 카페들의 경영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황에서도 경식을 제공하는 ‘스나크’, 알코올류와 세련된 인테리어에 포커스를 둔 ‘카페바’, 개인들의 개성적인 자가배전점(로스터리카페) 등 보다 다양한 카페의 형태로 카페문화의 침체기를 헤쳐나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일본의 카페업계가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데에는 스타벅스의 영향이 크다. 스타벅스의 일본 진출을 계기로 주목을 받게 된 ‘에스프레소바’와 커피와 식사를 제공하는 현대식 복합카페가 생기면서 일본의 카페문화가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에는 일본스페셜티커피협회(SCAJ)가 발족되면서 스페셜티커피의 보급과 홍보, 교육 등을 통해 현대식 카페문화의 보급과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일본의 소규모 자가배전점은 미국의 커피업계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인 예로 미국 매스컴에 의해 ‘커피계의 애플’, ‘서드웨이브’의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는  ‘블루보틀’이다.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은 일본의 깃사땡문화에 착안하여 ‘바로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를 한잔씩 정성들여 내려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컨셉트를 바탕으로 ‘블루보틀’을 오픈했고, 고급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블루보틀(네슬레 인수)은 미국과 일본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오픈할 예정이다. 



미국 커피시장이 스페셜티커피의 확산과 발전에 공헌한 소규모 로스터리카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일본의 카페시장은 정통적인 자가배전점을 근간으로 되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가지는 거의 같은 컨셉트였기 때문에 공존하고 공영할 수 있었다. 스페셜티커피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커피문화가 다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 동시에 일본의 소비자들이 다시 카페를 찾는 모티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업종이나 지역, 규모를 막론하고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이으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무수히 많다. 이는 일본인들 특유의 민족성과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커피역사 속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커피점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 보고, 그 장수비결을 알아보는 것은 곧 위기에 처한 한국 카페들에게 귀중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다음호부터는 일본의 장수카페 중에서 20년 이상 유지해 온 자가배전숍, 전통적인 개인카페, 독특한 컨셉트와 마인드의 카페 들을 엄선해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년. 30년을 넘어 50년, 100년을 이어가는 장수카페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Contributor
김나영 | 커피로스터/커피문화연구가
- 일본 카페바흐 창업자/<커피대전>저자 다구찌마모루의 수제자
- 일본 다이보커피점 커피기술 전수
- 로스터리빈즈숍 코페아신드롬 운영


 
월간<커피앤티>3월호(206호)에서 참고문헌 및 더 많은 이미지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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