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카페 만들기 프로젝트(6) - 긴자의 장수카페 ‘쥬이찌보우커피점’



100년카페 만들기 프로젝트(6)

완벽, 그 이상의 감동커피를 위하여
긴자의 장수카페 ‘쥬이찌보우커피점’


Reporter 김나영(코페아신드롬 대표)
 

일본에는 100년을 훌쩍 넘긴 ‘카페 파우리스타’를 비롯해 30년 이상 된 커피집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난해 60주년을 맞이한 ‘학림다방’을 필두로 해서 20년 가까이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카페가 적지 않다. 300년 동안 산마르코광장을 지켜온 베네치아의 명소 카페 플로리안은 세계 카페문화의 산 증인이자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들은 카페의 성공적인 경영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사례이자 모델이라는 면에서, 나아가 사회적 건전성과 건강성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하고 값진 존재들이다.
그 비결은 뭘까? 그들은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명맥을 유지하고 보전해 왔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20년 이상 이어 온 일본의 전통적 장수카페 20곳을 선정해 매월 한 곳씩 소개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일본의 스페셜티커피 발전에 공헌한 보아라커피’에 이어 이달에는 도쿄 긴자에서 41년의전 통을 이어가고 있는 쥬이찌보우커피점(十一房珈琲店)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도쿄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이었다.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커피점 중에 몇 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누적된 피로와 함께 몸에 축적된 카페인의 영향으로 오후가 되자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온종일 둘러봐도 취재할 수 있는 커피점을 찾지 못한 채 허탈감과 절망감이 밀려오면서 컨디션이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저녁때가 되자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방문하기로 했다.
입구를 들어서려는데, 옆쪽 창문 너머로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기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따가마’라고, 수십 년전에 후지로얄에서 제작했던 로스터기였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골동품인데,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곳은 부따가마가 가동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커피점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용하고 차분한 조명과 목재의 아늑한 느낌 등 긴자의 화려한 도심풍경과 사뭇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다. 통원목으로 길게 짜맞춘 바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예멘을 주문했다. 두세 테이블에서 고객들의 말소리가 소곤소곤 들렸지만, 진공관앰프에서 울려퍼지는 정겨운 올드재즈와 어우러져 마치 BGM처럼 느껴졌다. 주위의 다른 손님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그곳에 모인 손님들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매장 안의 분위기를 살펴보다가 스텝이 점드립으로 한 땀 한 땀 집중하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 시선이 멎었다. 그 광경을 한동안 바라보다 보니 최면이라도 걸린 듯 온 몸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 부따가마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로감도 한결 누그러졌다. 그동안 스텝은 밀린 주문을 소화하느라 커피를 내리고 제공하기를 반복했다. 마치 차를 우려내듯, 신중하면서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커피점은 대개 분위기를 중요시한다. 고객에게 커피를 제공하되, 음료 자체의 퀄리티 외에 공간적 역할에 주목한다는 얘기다. 커피마니아들 역시 커피의 맛과 함께 바쁜 일상생활을 잠시 잊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그래서 일단은 분위기를 통해 주인장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5분 정도 더 기다리자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하루 종일 많은 양의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커피는 도저히 삼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첫 모금을 입안에 흘려 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비단이 바람에 날리듯 목젖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가는 실키한 촉감, 부드럽고 투명하고 은은하게 남는 뒷맛… 긍정과 부정의 경계선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입에 댈 때마다 절제된 쓴맛과 함께 은은한 산미와 단맛이 조화를 이루었다. 식어서도 따뜻했을 때의 느낌 그대로였다. 미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쥬우이찌보우 커피점에서 사용하는 커피잔들. 왼쪽부터 50cc,100cc,120cc,200cc의 커피잔

긍정과 부정의 경계선에서 줄다리기하다
JR야마노테센 유락쵸역 부근, 고급 도시의 이미지가 강한 긴자 한복판에 위치한 ‘쥬이찌보우커피점’은 1978년에 창업해서 41년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자가배전 커피전문점이다.
41년 전에 오너가 람부르와 같은 자가배전커피를 융드립으로 제공하는 커피점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당시 람부르에 근무하고 있었던 야마다 씨에게 로스팅 등의 노하우를 배워서 절친한 친구와 함께 쥬이찌보우를 오픈했다.
그러나, 창업 당시 커피점의 이름은 ‘베셰’였다. 장소도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그 근처 건물의 지하였다. 베셰라는 상호는 ‘시드니 베셰’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쥬이찌보우의 오너와 친구가 당시의 재즈뮤지션 중에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시드니 베셰의 팬이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었다. 점포 이전과 함께 상호명을 현재의 쥬이찌 보우커피점으로 바꿨지만, 지금도 마스터를 포함해서 오래 전부터 왕래하던 단골손님들은 마치 별명을 부르듯이 애칭으로 베셰라고 부르고 있다.  
쥬이찌보우커피점(十一房珈琲店)은 ‘완전함을 한 단계 더 넘어선 커피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十(십/쥬)’이라는 문자는 충분, 충족의 ‘充(충/쥬)’라는 말과 동의어로 ‘全し(まったし완전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완전함을 하나 더 넘어선 ‘十一(십일/쥬이찌)’라는 문자는 달성한 완전함을 한층 더 발전시켜 새로운 한걸음을 내걷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 十一은 재수가 좋은 문자이기도 하다. 심산유곡에 살고 있는 두견과 야생조 ‘매사촌’의 속명으로, 깊은 밤에 ‘쥬이찌’라며 신비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보우(房)’는 열매를 가득 맺은 과실 등을 한데 모아서 묶어둔다(통괄하다/저축하다)라는 의미로 ‘○○書房(책방)’, ‘○○茶房 (차방)’ 등으로 사용된다. 쥬이찌보우커피점은 이렇게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여러 의미의 문자조합과 의미조합을 통해 개성이 강한 상호로 거듭난 것이다.

▲전문가가 제작한 진공관앰프

베셰에서 ‘쥬이찌보우’로 거듭나다
경영 면에서 이곳에는 여느 커피점과 달리 독특한 면이 있다. 전문적인 커피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문경영인 겸 커피마스터를 통해 41년 간 전통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창업 당시의 세팅과 경영은 오너의 친구가 맡았고, 두 사람은 오랜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카페의 커피이념을 만들고 다졌다. 그가 타계하면서 몇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4년 전인 2015년, 6년간 근속자인 하세가와 요시카즈 마스터에게 경영권을 양도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소유보다 존속에 의미를 두고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김으로써 카페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세가와 요시카즈 마스터는 대학생 때까지 커피와는 인연이 없었다. 가정에서도 인스턴트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가 커피가루를 구해왔고, 인스턴트처럼 뜨거운 물에 넣어서 섞었는데 전혀 녹지 않았다. 분쇄한 원두커피였던 것이다. 원두커피와는 무관한 생활을 했던 가족들로서는 ‘녹지 않는 커피분말’이 신기하고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런 그가 커피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대학 선배 덕분이었다. 선배는 여러 곳의 커피집을 데려가 줬는데 특히 간다에 위치한 커피점을 자주 갔다. 그곳에서 그는 인스턴트보다 맛있는 커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점차 그 깊고 오묘한 매력에 끌려들었다. 그곳에서는 베셰(쥬이찌보우커피점)의 강배전커피를 융드립으로 내려서 제공하고 있었다. 맛도 좋았지만 카페 분위기까지도 그만이었기 때문에 커피점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커피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2년만에 퇴직을 하고 베셰를 찾아갔으나 거기에는 티오가 없었다. 낙담한 그에게 베셰의 마스터가 다른 제안을 했다. 지유가오까의 쥬이찌보우커피점에서 일하던 직원이 새로 가게를 내게 됐는데 거기로 가겠냐는 것이었다. 24살의 하세가와는 그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고, 얼마 후 그의 추천을 받아 오야마다이의 커피점에서 스텝으로 일하게 됐다. 


오야마다이의 커피점을 퇴직한 이후에는 한동안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에스프레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따라 직장을 관두고 쥬이찌보우커피점에서 일하던 친구가 독립을 하게 됐고, 당시 그곳의 점장으로부터 그곳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바로 응할 수가 없었다. 그곳의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팬이었기 때문에 스텝으로 일하기보다 고객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한 달간의 생각할 시간을 얻어서 신중히 고민한 끝에 결국 쥬이찌보우에서 일하기로 했다. “24살 때 맺어질 수도 있었던 인연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십 수 년을 돌고 돈 끝에 결국 맺어지게 된 것”이 었다



십 수 년을 돌고 돈 끝에 맺어진 인연
쥬이찌보우커피점의 실내 컨셉은 선실이다. 배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비슷한 목재로 벽과 바닥을 꾸미고, 실제 선실에서 사용되는 벽걸이시계를 걸었다. 차분한 조명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전문기술자에 의뢰해 오더메이드로 제작한 스피커와 진공관앰프를 갖춤으로써 올드재즈의 추억이 깃든 공간, 따뜻하고 편안한 음질의 음악이 흐르는 공간을 지향했다. 홀은 총 32석 규모로, 6개의 테이블과 원목으로 만든 긴 카운터바를 갖췄다. 이 바에서 5명의 스텝이 능숙하고 정확한 솜씨로 손님을 맞고 커피를 내린다. 기본적으로 모든 커피는 융드립으로 추출하며,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리는 점드립을 통해 최상의 맛을 추구하고 있다.
커피메뉴는 총 30여 종. 블렌드커피 5종류(720엔), 싱글오리진 20 종류(770엔~), 빈티지커피 1종류(1,080엔~), 각종 베리에이션커피가 망라돼 있다. 커피음료 외에 홍차, 허브티, 코코아, 주스 등의 차와 소프트음료도 제공하고 있으며, 케잌, 쿠키 등 먹거리도 곁들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메뉴는 강배전커피와 10년 이상 숙성시킨 빈티지커피, 기간한정커피 등이다. 이들 시그니처 커피메뉴는 많은 커피마니아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요인이기도 하다. 맛은 안정성과 지속성에 중점을 둔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생두의 퀄리티가 좋은 커피를 중심으로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간한정커피는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개성있는 원두를 한두 달 간격으로 교체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취재 당일에는 기간한정 메뉴로 케냐 내추럴을 맛볼 수 있었다. 하세가와 마스터가 직접 내려주는 케냐의 첫맛은 강렬했고, 뒷맛은 은은했다. 케냐 특유의 산미와 단맛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맛이었다. 식어서도 신선한 과일의 과즙과도 같은 상큼함과 매끈한 촉감이 살아 있었고, 그 여운 또한 길게 이어졌다.

생두를 선정하는 기준은 신선도와 맛이다. 네임벨류에 구애받지 않고 맛있다고 느껴지는 뉴크롭스페셜티커피를 사용한다. 로스팅 역시 배전도에 연연하기보다 원두의 특징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로스팅, 감칠맛과 단맛이 조화롭게 생성되는 로스팅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2차클랙 이전의 하이로스트에서 이탈리안로스트까지 로스팅 레벨의 폭이 넓다. 예전에는 강배전만 취급했지만, 하세가와 마스터는 약배전부터 강배전까지 다양한 로스팅을 구사한다. 로스팅에 따른 맛의 폭을 넓혀 원두의 개성과 다양성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사용하고 있는 로스팅머신은 후지로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지커피기기의 ‘부따가마’다. 3.5kg 용량의 반열풍 방식인 이 부따가마와 함께 미네르바 그라인더도 쥬이찌보우의 터줏대감이자 상징으로 꼽힌다. 미네르바는 이탈리아의 그라인더 전문회사지만, 20년 전에 폐업했기 때문에 더는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엔틱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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