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Coffee 나의 별빛, 나의 인디언

나의 별빛, 나의 인디언
Reporter 엄폴



나에게는 라떼아트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스토리가 있다. 나의 라떼아트와 월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하나의 디자인 그리고 한 명의 인연이 있다.
오리지널 이름은 더블 페이스고 2002년에 만들어진 그 디자인은 바로 인디언이다. 그냥 볼 때는 인디언의 모습인데, 뒤집어서 보면 다람쥐의 모습이 나온다. 라떼아트를 처음 시작한 2005년에서 3년 전인 2002년, 나는 해군에서 복무 중이었고 월드컵을 보며 열심히 응원할 때였다. 그때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던 시절이었다. 2005년 커피를 시작할 때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었고,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인디언은 가끔 인터넷을 통해 본 게 전부였다. 당시 주로 에칭기술을 사용해 캐릭터 아트를 하던 나는 인디언은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와 초콜릿 소스로 꽃 에칭 디자인을 하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2010년 첫 국가대표 선발전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와 손님이 뜸한 날 바에 앉아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독일 출신의 젊은 외국 바리스타가 수준 높은 클래식한 튤립 라떼아트를 만드는 영상이었는데 마지막에 인디언을 만드는 것을 보고 순간 얼굴을 더 살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8년을 만들어 오고 있는 인디언은 나를 가장 많이 알려준 디자인이다. 팅커벨과 매직스틱이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다면, 인디언은 엄폴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려준 아주 고마운 디자인이다.

더 주목할 점은 인디언 디자인으로 인해 한 사람과의 인연이 스트롱 핸드드립 커피처럼 더 진하게 우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6월,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사람과 함께 미얀마에서 커피 세미나를 마치고, 나머지 여정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루이지 루삐(Luigi lupi)다. 이탈리아의 바텐더이자 소믈리에 트레이너였고, 현재는 바리스타 그리고 교육자로서 65세의 나이로 전 세계를 다니며 커피와 라떼아트를 전하고 있다. 지금은 LAGS 라떼아트 그래이딩 시스템이라는 라떼아트 인증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커피를 처음 시작할 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나의 친구가 되었고 이탈리아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2005년 커피매거진에 나온 루이지 루삐를 보며 ‘나도 저렇게 세계를 다니면서 라떼아트를 알리고 커피를 알리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처음 루이지 루삐를 직접 만난 2011년 서울 카페쇼를 앞두고 “You must be a Luigi Lupi, right?”을 50번도 넘게 연습했다. 인사를 하고 라떼아트 사진을 보여준 뒤, 루이지 루삐의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면서 아트를 했다. 그 이후로는 매년 루이지 루삐를 카페쇼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14년 카페쇼 마지막 날, 부스에서 라떼아트를 하고 있을 때 루이지 루삐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를 이탈리아로 초대하며 이탈리아 국가대표인 키아라를 가르쳐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Yes, sure, of course, why not?”라고 대답하고 몇일 후, 내 손에는 밀라노행 티켓이 주어졌다. 
키아라는 세계 대회에서 2위를 했다. 그 후 이태리를 자주 가게 되면서 루이지 루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인디언 디자인이 그의 디자인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는 튤립이라는 디자인을 만들기도 했으며, 라떼아트의 또 다른 전설인 미국의 데이비드 쇼머와의 스토리도 들려주었다. 하루는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그의 차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이지, 에릭 클랩튼 알아요?” “암, 물론이지” “비비킹은요?” “물론, 알지” “많은 사람들이 에릭 클랩튼의 영향을 받고 음악을 해요. 하지만 기타의 신이라고 불리는 에릭 클랩튼에게도 영향을 준 그의 롤 모델이 있어요. 그 사람이 비비킹이에요. 비비킹은 기타의 전설이죠. 루이지는 라떼아트의 비비킹이고 나는 에릭 클랩튼이에요. 당신의 인디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의 인디언이 없었을 테니까요”
3년이 지난 어느 날, 이태리 리미니에서 열린 카페쇼에서 루이지 루삐와 나는 무세띠 커피 부스에서 함께 시연 및 세미나를 했다. 나는 우리 둘의 스토리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라떼아트를 보여주다가 인디언을 보여준다고 말을 하고는 루이지 루삐의 16년 전 인디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벌써 끝났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지 루삐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나의 인디언을 그리고는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에게 두 인디언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여러분 이 디자인은 어느 바리스타가 개발한 디자인입니다. 그분은 여기 앞에 서 있는 루이지 루삐죠. 저는 인디언을 7년 넘게 그려오고 있습니다. 발명한 사람이 루이지 루삐라면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저 엄폴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보고 있는 첫 번째 인디언 디자인이 없었다면 제 라떼아트 또한 당연히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여러분 블루스 좋아하세요? 저는 라떼아트계의 에릭 클랩튼이고, 제 앞에 서있는 루이지 루삐는 라떼아트계의 비비킹입니다” 루이지 루삐는 이 스토리를 이탈리아어로 통역을 해주었고 통역을 하면서 나를 보며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시연이 끝난 후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후로 매일 그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고, 지금도 루이지 루삐와 함께 하는 자리면 사람들에게 이 스토리를 들려준다. 지금은 미얀마에서 세미나뿐만 아니라 토크쇼에서 이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다. 라떼아트를 보여주는 것보다 이런 순간들이 나에게는 더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

커피를 통해 인생을 많이 배운다. 이 글을 보는 많은 분들도 커피를 통해 인생을 배워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해본다. 인생을 들여다보면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 응원을 들을 때 그리고 누군가 나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알아줄 때 정말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다. 나의 커피 인생에서 루이지 루삐가 그랬다. 처음엔 롤모델로 시작해서 몇 년이 지나 처음 만나고 몇 년 후, 4번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을 때 나의 타이틀보다는 나의 라떼아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또 다른 대회의 결승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에게 긴장하거나 손을 비비거나 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Because Um Paul, you are the best in the world. You, show your art. Remember." 이 한마디를 진심으로 해주었다. 그 후 대회를 임하는 나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고, 다음 해 국가대표도 되어,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루이지 루삐는 나에게 라떼아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흡수하며 그를 닮아간다. 그는 대회를 치르는 방법이나 룰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는 나의 마음, 멘탈을 만져주었다. 나는 그것을 흡수하며 변해갔다.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 또한 정말 행복한 일이다. 어두운 밤바다 칠흑같이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것과 동시에 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빛나는 별, 바로 그것이 롤모델이다.
우리는 모두 커피라는 산업 안에서 열심히 그리고 숨 가쁘게 살아간다. 누구는 수영을 하고 누구는 돛단배를 타고 누구는 노를 저으며, 또 누군가는 제트스키를 타고 가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는 난파되어 물 위에 떠있기도 하다. 하지만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밤바다의 하늘 위에 나의 갈 길을 알려주는 별자리가 있다면, 내가 따라 살아갈 롤모델이 있다면 속도는 느릴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 곳에 다다르리라 믿는다. 때로는 풍랑이 몰아치고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을지라도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비가 내려 목도 축이고 고기를 잡아 허기도 채우고 풍랑도 잠잠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에 그린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혼자서는 힘들지만 나를 이끄는 그 별빛 하나 내 마음에 있다면 가는 길이 비록 힘들지라도 갈 수 있다.
세미나를 할 때면 항상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커피를, 로스팅을 그리고 라떼아트를 잘할 수 있나요? 나의 대답은 항상 같다. “Stop studying. Just try like a baby”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롤모델을 정하고 모든 것을 따라한다. 그것이 최고든 아니든 매 순간 엄마, 아빠, 형, 누나 등 모든 가족들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고 닮아간다. 그것이 표준말이든 사투리든 상관없다. 아이들은 공부가 아닌 스스로의 생각으로 끊임없이 따라하기를 반복하는 시행착오의 최고수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시행착오는 공부보다 탐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다. 그리고 탐구는 궁금해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다. 내가 따라가야 할 별빛 하나가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루이지 루삐가 내 커피 인생의 별자리가 되었듯이 나 또한 누군가의 별자리가 되어 길을 잃지 않도록 밝은 빛을 비춰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도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줄 롤모델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밝게 빛나는 별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