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텔라커피 르완다 기행(2)



그들이 그곳에 있다

마리스텔라커피 르완다 기행(2)

Contributor 이정민, 박성우(마리스텔라 커피로스터스)

아침 햇살은 이들의 삶에 따스함을 나누듯 매일 그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주거나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누린 것이 많았음을 깨닫게 된 날에 또 다른 산간지역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잠시 들린 또 다른 협동조합은 파인애플을 또다른 형태로 가공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파인애플 껍질을 사과처럼 깎아내고 있었고 즙을 짜낸 파인애플은 발효저장실에서 숙성되어 와인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인애플 와인과 패션후르츠 착즙액을 상품화해서 수출할 수 있는 것도 구호단체에서 만든 협동조합의 역할이 컸다. 대출을 해줌으로써 자본을 형성한 뒤, 실행 가능한 기술을 교육을 해서 수출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파인애플 와인을 맛을 본 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르완다의 고도는 여느 커피산지의 고도처럼 높고 높아서 가끔은 숨이 가쁘기도 했고 또 다시 산으로 돌고 돌아 올라가니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달리는 차의 옆으로 아이들이 몰려왔다.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형과 누나들… 그들 또한 유치원생 정도로 보였다.
산비탈 곳곳에 자리 잡은 집들 중 한집에 방문했는데 입구에서 돼지들과 얼룩소가 우릴 반겨줬다. 르완다 내전으로 남편을 잃고 일곱 아이들을 키우며 생계가 막막했던 한 여인은 옥스팜의 지원으로 돼지 한 마리를 지급받았고 그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아 이웃의 사정이 비슷한 또 다른 여인에게 20프로의 돼지를 기부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마을의 900가구에서 돼지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후 조금씩이지만 저축을 하며 의료보험도 넣고 먹고살 길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돼지의 배설물을 이용하여 바이오가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자 주방에서는 파란 불꽃의 가스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은 이들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땔감을 하고 물을 뜨러 다니며 학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땔감을 하지 않아도 되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여인들도 땔감을 할 시간에 물을 뜨러 다니거나 농사를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또한 바이오가스를 만드는데 쓰이고 남은 돼지의 배설물로 유기농 비료를 만드는 방법을 옥스팜에서 알려줬고, 그로 인해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르완다에는 생각보다 감자와 시금치 외에는 흔한 채소조차 보기 힘들다고 느꼈는데 현지인들은 채소를 제대로 먹지 못해 비타민 공급원이 부족했기에 작은 텃밭이지만 이 또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누군가를 돕는 것에 지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후원단체는 그 지역사회와 정부와 삼자 회의를 통해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사업을 찾아 빨리 정착하게 도와줬다. 무엇보다 기술을 알려주고 비전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왔다. 이처럼 마인드 자체를 바꿀 수 있도록 돕는 점이 가장 놀라웠고 개인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초월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 또한 개인의 작은 마음들이 모여야 실현 가능한 것이니 이 마음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웃의 한 여인이 자신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가져왔다. 그녀의 미소에서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인은 평생의 꿈이 물탱크를 집에 설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돼지 한 마리를 씻기는데 30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여러 마리를 키우면서 먼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데 반나절 이상을 쓴다고 했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지 다시 한번 새기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지금도 물을 트는 순간마다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뒤로하고 굽어있는 산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폭우가 끊임없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풍경조차 한국과는 다른 전혀 낯선 모습이었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어두워지는 산속 마을의 집으로 가는 사람들은 한시바삐 서둘러 비를 맞으며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다니고 있었다. 우산조차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하나 있는 우산을 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고 그 옆에서 우산을 못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차마 나설 수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히 누려온 우리의 삶이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느끼면서 당연히 누렸던 것들에 대해 너무나 죄송한 마음만 들었다.

 

지금도 그들은 같은 지구 위에서 숨을 쉬고 물을 마시며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 구호단체의 노력이 없었다면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나온 사람들은 어떤 희망도 없었을 것이다. 르완다 내전에서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재건을 위해 힘쓸 기반조차 없었을 것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의 차원을 넘나들며 더 다양한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고 봉사하는 이런 단체조차 개인의 마음이 모이지 않는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평화와 공정한 사회를 위해 잔다르크나 간디처럼 앞에 나서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것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인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명감과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그러한 사명감과 용기로 자신의 삶을 희생과 봉사로 채우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런 분들 앞에서 나의 삶과 욕심은 그저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일반인인 나조차도 마음을 내어 조금만 아껴서 기부한다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여 물이 필요한 곳에 물을 주고 빛이 필요한 곳에 빛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이 여행을 통해 사람의 힘은 자연만큼이나 혹은 자연보다도 위대함을 깨달았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거대한 비구름이 되어 물을 줄 수 있고 태양의 일부가 되어 힘든 이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이 해 줄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더 자세한 내용과 전체 이미지를 월간<커피앤티> 3월호(206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