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커피, 본격 로스터의 길로 들어서다

커피여행자 이담의 커피 이야기
바람커피, 본격 로스터의 길로 들어서다





커피 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원고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커피여행자, 커피트럭 운영자, 카페 사장, 커피 내리는 사람, 바리스타 등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나는 커피로스터인 것 같다.  
그래서 연남동 바람커피의 공동대표인 김도형이 “명함을 만들어야 하는데 타이틀을 뭐로 할까요?”라고 물어봤을 때 커피 로스팅을 열심히 하고 싶어서 ’공장장’으로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지금 내 명함에는 ‘공장장’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 커피를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나 그렇듯이 프라이팬 로스팅부터 시작했다. 첫 번째 로스팅은 당연히 대실패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피 볶기를 마쳤지만 까맣게 타버린 숯이 남아있었다. 프라이팬은 커피 로스팅을 하기에는 무척 까다롭고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다. 
‘그래, 좋은 경험을 했어’라고는 생각했지만 로스팅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원두로 커피를 내려봤더니 그래도 먹을만한 커피가 나왔다. 그 이후로도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수망을 사서 로스팅을 하다가 나중에는 유니온 통돌이로 로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통돌이로 로스팅을 한 이후에는 커피가 맛있게 나오기 시작했다. 로스팅을 제대로 하려면 열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드럼이 돌아가는 형태가 가장 좋다. 그래서 로스터기들이 대부분 드럼이 돌아가는 형태로 제작이 되는 것이리라.
어쨌든 통돌이를 돌리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커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한 번에 500g을 넣어서 볶는 통돌이는 커피가 많이 팔리면 팔리는 대로, 커피가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열심히 돌려야 했다. 통돌이 로스팅은 로스터를 성장시켜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일일이 돌려야 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붙어 있으며 생두가 원두가 될 때까지 온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트럭으로 움직이며 계속 로스팅을 해야만 했던 것도 로스팅 실력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가능하면 날이 좋은 날 로스팅을 하려고 했지만, 사정상 비가 오거나 바람 부는 날에도 트럭 뒤에 앉아서 통돌이를 돌려야 했다. 덕분에 나중에는 어느 정도 내공이 생겨서 웬만큼 날씨가 안 좋은 날에도 꽤 먹을만한 원두가 나오게 되었다. 
비록 온도계도 없고 모터도 없어서 매번 손으로 돌려가면서 로스팅을 해야 했지만 한번 돌릴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실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로스팅이 귀찮거나 힘들지 않았다. 
 

▲ 카페 한 쪽에 자리 잡은 로스터기

연남동 골목 안, 반지하 공간의 바람커피를 준비하면서 로스터기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직화 통돌이로 로스팅을 해 왔기 때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브랜드는 직화식 로스터로 잘 알려진 일본의 후지로얄이었다. 물론 프로밧이나 기센, 디드릭, 국산 로스터 브랜드인 태환이나 이지스터, 커피밥 등도 살펴보았고, 스트롱홀드도 물망에 올렸다. 하지만 역시 예산이 문제였다. 서울 연남동의 임대료도 만만치 않았고, 오픈 준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로스터기 구입을 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당분간은 제주에서 들고온 후지로얄 잇따로와 유니온 통돌이가 현역으로 뛰어야 했다. 문제는 배기시설이 없어 로스팅할 때마다 카페가 연기로 꽉 찬다는 것이었다. 
사실 로스터기에 대한 고민은 나보다는 공동대표인 김도형이 더 많이 했다. 평소에 시장 조사를 많이 해서인지 이미 여러 로스터기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연남동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무실과 가까운 후지로얄 본사 여러 번 가서 상담도 받고 세미나에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예산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김도형의 레이더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선배! 터키제 로스터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한동안 디드릭에 꽂혀있다가 어느 날부터 오즈터크나 하스가란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터키는 커피에 있어서는 원조 같은 곳이잖아요. 커피 문화가 오래됐으니 아무래도 로스터 만드는 노하우도 많이 있을 것 같고. 외국 사이트 리뷰를 보니까 하스가란티 쓰는 사람들이 커피를 진지하게 하는 것 같아요. 선배랑 딱 맞을 거 같은데…….”
솔직히 나는 커피를 볶는 사람이지만 로스터기 욕심이 별로 없었고 기초적인 지식 외에는 별다른 경험이 없어서 반드시 이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없다. 터키제 로스터인 하스가란티는 예전에 제주의 커피쟁이에서 쓰는 것을 보았고, 대전의 커피 친구인 곰에스프레소의 박남신 사장도 사용하고 있어서 친숙했다. 로스팅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면서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며칠 후에 로스팅 기계가 도착했다. 2.5kg 하스가란티인데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였다. 검은색과 황동색이 우리 카페 인테리어에도 잘 어울렸다. 미리 가서 로스터기 사용법이라도 배워볼까 했는데 오픈식 하고 나서는 할 일이 많아서 카페에서 꼼짝도 못 했다. 일단 로스터기가 들어오면 몇 번의 시행착오를 해보면 될 것 같았다. 

▲ 새로 설치한 로스터기를 테스트 중이다

로스터기 위치를 잡고 가스관과 외부 연통을 연결하고 나서 본격적인 시운전을 해보았다. 하스가란티는 작고 단단한 느낌이었는데 조절할 게 많지 않았다. 드럼 온도계 하나뿐이었고 불 조절은 가스관에 연결된 미압계를 보면서 해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온도계 하나 없이 몸으로 익힌 통돌이 로스터에게는 큰 문제는 안 될 것이다. 로스터들 사이에선 하스가란티는 반열풍식이 아니라 반직화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열풍 비율이 낮다. 이것 역시 열풍이 아예 없는 타공식 직화 통돌이 로스터에게는 큰 문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로스팅 시운전을 해보았다. 생두는 콜롬비아 수프리모 메델린으로 골랐다. 로스팅 연습용으로 비싸지 않고 무난한 커피다. 로스팅 기계에 다뤄야 할 장치들이 많아서 진땀을 흘렸지만 첫 시도치고는 꽤 괜찮게 나왔다. 아니, 굉장히 훌륭하게 나왔다. 세밀하게 불 조절을 하기는 어렵지만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좋았다. 통돌이 로스팅에서 쓰던 프로파일을 거의 비슷하게 진행해도 된다는 것은 내게는 큰 매력이다. 후지로얄 잇따로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터키제 로스터가 강배전에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약배전에서도 커피가 잘 나왔다. 꽤 오래 시행착오를 겪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너무나 손쉽게 로스터기를 이전할 수 있었다. 
 
통돌이로 돌리면서 수많은 변수와 싸우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한 번에 2Kg씩 로스팅을 할 수 있는데 로스팅 시간도 더 짧아져서 생산성도 좋아졌다.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아서 차라리 5kg 로스터를 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되지만 일단 제대로 된 로스터의 길로 들어섰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아직도 하스가란티 로스터에 많이 익숙치 않아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있지만, 실수를 넘어서 꾸준히 맛있는 원두를 만들어 주고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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