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재형의 Healthy] 산에 들에 널려있는 불로초, 냉이



산에 들에 널려있는 불로초,
냉이
Contributor 상재형(카페 Sano 대표, 본브릿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

어릴 적 배웠던 노래나 글귀 중 유독 잊히지 않고 입에서 맴도는 구절들이 있다. 나에겐 ‘봄맞이 가자’라는 동요가 그렇다. 다른 가사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딱 한 부분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만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그 당시엔 달래, 냉이, 씀바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커녕 그게 나물 이름인지조차도 몰랐다. 중학생일 때, 한창 고기와 인스턴트에 빠져 채소는 쳐다보지도 않던 나이였음에도 생소한 나물 반찬에 밥 한 공기를 해치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그 맛있는 나물이 바로 냉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동요 가사에도 쓰일 만큼 냉이는 봄을 대표하는 채소이며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나물이다. 보통 가을 전에 수확하는 작물을 거두고 그 밭에 냉이를 심어 겨울이 지나면 수확한다. 냉이는 특별히 난방이나 하우스가 필요 없이 심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라기 때문에 겨울 밭의 주요 작물 중 하나다. 사람 따라다니는 풀이란 별명이 있을 만큼 어디서든 잘 자라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가 잎, 줄기, 뿌리 모두 먹을 수 있어 예부터 가난한 이들의 소중한 식량이기도 했다.
냉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즐겨 먹던 나물이다. 일본에서는 정월 7일이 되면 ‘나나쿠사가유’를 먹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는데 이 나나쿠사가유’는 봄에 나는 일곱 가지 나물, 냉이, 미나리, 쑥, 무, 순무, 광대나물, 별꽃을 넣어 만든 죽이다. 중국 서남지역에서는 냉이소를 넣어 ‘제채교’라는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옛 송나라 주자의 제자였던 채원정이 집안이 너무 어려워 배를 주리다 서산으로 들어가 냉이를 캐서 먹으며 학문들 닦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과 미네랄을 가장 먼저 보충할 수 있게 해주는 냉이는 현대적으로도 훌륭한 영양식품이다. 칼슘, 철분을 비롯하여 고혈압과 혈관에 좋은 칼륨, 마그네슘도 풍부하며 항산화물질로 병원 영양주사의 단골 성분인 셀레늄, 망간, 구리, 비타민 C, 엽산 역시 풍부하다.
과거부터 냉이는 지혈제, 특히 산후 출혈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연구에서도 자궁 수축 작용 및 지혈 효과로 생리과다 여성 및 출산 후 출혈 감소에 도움을 주는 것이 확인됐다. 봄철에 아이를 낳는 산모라면 미역국과 더불어 냉이도 훌륭한 산후조리 식품이 되겠다. 동의보감에서 냉이는 간의 기운을 잘 통하게 하고 속을 조화롭게 하여 오장을 잘 통하게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도 간의 지방 축적을 억제하여 지방간을 줄여주고 간 기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냉이는 잎, 줄기, 뿌리 모두 식용 가능하며 흰 꽃이 피면 화전에 장식용으로도 썼다. 무침부터 국까지 다양하게 먹으며 식후에 마시는 차로도 그 맛과 향이 훌륭하니 좀처럼 버릴 데가 없는 녀석이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영양 또한 훌륭하니 옛사람들에겐 정말 귀중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캐서 먹던 백이 숙제는 굶어 죽었다 하고 냉이로 주린 배를 채우며 학문을 닦은 채원정은 훌륭한 학자가 됐겠는가.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찾아 온 세상을 다 헤매고 다녔지만 어쩌면 산에 들에 널려있던 이 냉이가 그 불로초에 비견할 만큼 훌륭한 나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냉이를 꾸준히 먹었다면 더 건강하게 장수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본질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흔하고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천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행여 나부터가 가까운 이들의 진가를 저평가하고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문득 반성하게 된다. 친하기에 오히려 소홀했을지 모를 그들과 냉이 차 한잔에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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