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문화공간 바오밥나무, 커피로스터 이종신



커피人 토크 (3)

향긋한 커피와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 
지역의 문화공간
바오밥나무
커피로스터 이종신


사람들과 어울림을 좋아하는 이종신 대표의 카페 바오밥나무는 오랫동안 정성으로 닦아온 나무마루 위에 클래식 선율이 가득한 곳이다. 지역 화가들의 전시를 위해 내어준 작은 벽면,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가져다 놓은 음반과 서적들. 커피향이 좋아서 드나든 사람들이 카페를 아끼며 가꿔온 흔적이 가득하다. 2001년 개점 이후 커피가 좋아서 그저 성실하게 커피를 향해 나아가는 이종신 대표의 카페 바오밥나무는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믿음직한 나무로 강남 한 가운데 묵묵히 서있다. 낯설게 느껴지는 태환 1kg 전기식로스터기로 커피를 볶는 이대표의 커피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들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다. 커피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곧 카페인데, 바오밥나무에 오면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느낌이 든다. 카페를 운영하기 전에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나?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고, 카페를 하고 나서는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과 책에 대해, 생각에 대해 공유할 수 있으니 좋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지킨다는 의미가 각별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을 것 같다.
이곳을 들리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7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직 있어서 반갑다고 들어오는 손님, 밖에서 기웃하더니 ‘맞구나’라며 10년 만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감사하다.

베니스에 카페 플로리안을 갔더니 2020년에 300주년이 된다고 한다. 플로리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몇몇 상점들도 그런 시간을 지켜온 곳이 있다.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임차를 하고 있으니 오래 지속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내 건물이어야 가능하거나, 임대료가 적정선으로 유지되야 하는데 여러 이유로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한다. 일본의 예를 하나 들면 관동의 지방도시에 작은 포장마차 카페가 있다. 현립체육관 옆 초등학교 담장에 오후 5시만 되면 중년 남성 둘이 포장마차 카페를 편다. 이 카페가 관동관광 100선에 포함되어있다. 아버지가 하던 것을 아들이 대를 이어서 하는 중이다. 학교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포장마차가 서고, 저녁에 학교담장으로 가로등이 쭉 켜지는데 포장마차가 있는 곳은 가로등을 꺼준다. 석유램프로 빛을 내는 카페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커피하우스는 좋은 음악과 좋은 사람이



바오밥나무에 오면 늘 클래식 음악이 함께하는 것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카페를 하기 전 수출입 업무를 할 때 시내에 나와서 일을 하다가 에이전트사무실에 잠깐 들러 다음 약속 때까지 잠시 머물 곤 했다. 그 사무실에 FM라디오 클래식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거기 여직원이 ‘미스터 리, 이 음악 뭔지 알아요?’ 묻는데 내가 알 턱이 있나. 그런데 그 사무실을 나오면서 내가 굉장히 무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별표전축에 가서 일체형 턴테이블을 하나 사고, 천원에 4장을 주는 클래식 빽판을 사서 음악을 찾아 듣게 됐다. 소리가 너무나 좋았다.

음악을 좋아했던 마음의 여유가 카페에 그대로 담기는 것 같다. 카페가 지역의 작은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만, 주인이 문화적인 것을 즐기지 않는다면 문화가 담길 수 없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일 수 없다.
바오밥나무를 열고 처음엔 CD로 음악을 틀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오면서 음반을 주고 가기도 하고 음악관련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오디오 시스템이 정리됐다. 메킨토시 엠프에 대편성과 소편성을, 퓌셔 알레그로는 소편성을 물려서 듣는다.

젊은 시절, 음악다방에서 커피를 즐기던 멋쟁이었을 것 같다. 예전 명동에 음악다방이란 곳이 어떤 분위기 였는지, 어떤 사람들이 즐겼는지 궁금하다.
명동에 가면 많은 다방들이 있었다. ‘꽃다방’이란 곳은 좀 시끄럽고 뜨내기 같은 친구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했고, ‘타임’에는 커피맛 좀 아는 친구들이 모였다. 유네스코회관 앞 2층에 ‘도심’이란 다방은 지금은 유명한 이수만이 무명시절 통기타를 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다. 당시 4트랙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산마리노’도 멋진 곳으로 기억한다.
음악감상을 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곳이 꽤 있었다. 당시 김경남이란 통기타가수는 노래를 아주 잘 했는데 자기 노래는 없고 유명한 곡만 불렀다. 땀을 뻘뻘 흘리고 노래해도 사람들의 박수는 인색했던 반면, 김세환은 무대에만 올라가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경남은 자기 노래가 아니어서 그랬다. 어디서든 자기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다. 로스터리카페를 하는 사람에게 오리지널리티는 자기 커피를 자기가 볶아서 책임지는 것이다. 그래야 내 커피고, 내 맛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커피를 하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내 커피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 

스몰로스터리카페의 주인은 많은 역할을 맡아서 수행한다. 그 중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지?
우선 손님이 기분 좋게 마시는 커피를 만드는 일이 첫번째다. 중요한 것은 내 커피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진다는 주인의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이종신 대표의 로스팅 프로파일북을 보고 꼼꼼하게 일일이 기록해 놓은 것에 깜짝 놀랐다.
어떤 일이든지 정확하게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하는 방법은 성실함 밖에 없다. 잠깐 놓더라도 그냥 진행되겠지만 그것을 놓을 수 없다. 핸드픽도 게으르고 귀찮으면 넘어가겠지만 그것을 놓지않는 것은 약속 같은 것이다.

많은 제자들과 주변 커피인에게 한결같이 커피하우스를 아끼고 진지하게 커피를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들에게, 시작한 젊은 도전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다. 커피에 도전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선 커피를 한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결심이 섰다면 충실히 믿고 걸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일에는 신용이 필요하다. 재료를 구할 때 나는 생두의 가격을 놓고 흥정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내게 필요한 퀄리티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상대는 그에 맞는 비용을 받고 내가 원하는 콩을 공급한다.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것, 그때 신뢰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그린빈의 선택도 다양해지고 로스팅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있다. 로스팅포인트는 어느 정도를 선호하는지? 
나는 서래농산에서 그린빈으로 이어지는 한 곳의 신용을 믿고 생두를 구매한다. 로스팅포인트는 미디움으로 주로 볶는다. 콜롬비아, 만델린, 예가체프, 안티구아, 따라주, 탄자니아PB, 케냐 등 싱글 7~8가지를 볶고 있고, 그 중에 4가지로 블렌딩을 한다. 가끔 특별한 것이 들어오면 손님들에게 소개하는데 작년에는 케냐 구하마가 괜찮았고, 라오스 커피도 로스팅하고 있다. 

커피와 인연을 맺은 계기 



커피를 시작하게 될 당시 정보도 없고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커피공부를 시작했는지?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커피가 좋다면, 커피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한승완씨가 누구 한 사람 만나보자 해서 소개받은 것이 이정기씨다. 당시 이실장이라 부르던 시기에 그의 서초동 공방에서 커피이야기를 했다. 커피를 알기 시작 할 때 아주 쇼킹했던 것이 두 가지다. 첫째는 입에 긁히는 커피가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커피가 썩는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커피에 무지했고, 커피에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실장을 중심으로 커피공부를 함께 해보고자 4명이 함께 모인 것이 2001년 봄이다. 나와 김응래 화백, 여수에서 온 옐로우몽키 대표와 주말에 만나서 4시간 수업 4회를 하기로 했던 것이 서로 시간을 맞추는데 6개월이 걸렸다.(웃음) 그리고 ‘마지막 수업은 여수에 가서 하자’는 말에 함께 차를 타고 여수 돌산도에 가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새벽 2시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즐거운 기억이다.

이정기씨 공방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 같다. 그때 태환로스터기로 로스팅을 했었나?
그때 이정기씨 공방에 태환 1kg 로스터기가 있었는데 실내에 두지 않고 조그만 트럭에 올려놓고 밖에서 로스팅을 했던 재밌는 시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압구정 허영만 사장도 들렀고, 이정기 씨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 로스팅에 대해선 의견을 나누지 않았던 딴딴한 분위기도 있었다.(웃음) 이정기씨가 볶고 옆에서 2도 간격으로 로스팅데이터를 기록하는데 궁금한 것들 물어보고 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그늘이 되어주는 바오밥나무


바오밥나무를 오픈 할 때 카페의 이름을 어떻게 정했나?오랜만에 강남에 오면 많은 차들과 빌딩이 차갑게 느껴지고, 서초역 한복판에 서있는 향나무가 외롭게 버티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바오밥나무는 마른 땅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사람들의 쉼터를 마련해준 느낌이 든다. 
2001년 늦은 가을 오픈하면서 어떤 이미지, 어떤 분위기의 이름이 좋을까 몇 달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바오밥나무가 떠올랐고 기후적으로 커피산지에 자라는 나무이고, 우리나라의 정자나무처럼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카페이길 바라면서 이름을 정했다. 그리고 김화백이 바오밥나무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줘서 지금까지도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카페를 시작할 당시, 태환로스터기의 전기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는 태환 1kg 가스식로스터가 승인이 되지 않았을 때다. 그래서 전기식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커피와 만나기 전, 수출입 업무를 30년 동안 카페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일들을 했나?
나는 무역회사의 외환업무를 주로 했었다. 선배가 불러서 일하러 갔는데, 무역부 일을 맡겨서 시작하게 됐다. 선배는 일을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기본적인 것 몇 개를 알려주더니 나머지는 전에 작업했던 파일을 보고 찾아서 하라고 했다. 수출입에 관한 기본적인 업무, 수출조합에 관한 것, 은행에서 다루는 수출입 업무 등 온갖 곳을 다니면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다. 그때는 수출입 업무와 관련된 은행 일들이 꽤나 복잡했고 새로운 규정들이 많아서 은행에서 문제가 될까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서를 별도로 가지고 다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외환업무를 약 30년동안 했다.

커피와 관련된 것을 직접 수입하거나 무역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그때는 기본적인 자료나 정보가 없으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서래농산에서 생두를 수입하는 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수입에는 관심 없었다. 카페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밌었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즐겁게 카페를 운영하는 것 같다. 카페를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카페에 매어 있는 시간이 많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있는 이 공간은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지만, 문화가 담겨있는 카페로 기억되길 바란다. 나이든 아저씨가 편안하게 커피하는 공간이다. 

정기헌 | 카페일상 대표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6 | 02-762-3114

리뷰&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