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Tea 차에 담긴 여유로움

차에 담긴 여유로움
티마스터를 향한 도전 (11)

Reporter 박은애 (티엘츠 대표)

영국 런던은 뉴욕, 도쿄와 함께 세계를 이끄는 도시 중 하나로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의 발상지임과 동시에 세계 금융의 중심지다. 몇 년 전 영국이 브레시트를 결정한 후 국제 금융센터들이 프랑크푸르트로 많이 옮겨 갔고, 그래서 덕분에 프랑크푸르트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독일 현지의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과거의 번영을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국가임은 틀림없다.
생활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매너는 그들의 품격으로 이어지면서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택시드라이버, 서점 직원, 마켓의 캐셔... 내가 경험한 그들의 마지막 인사는 “Thank you”가 아니라 “좋은 저녁 보내”, “좋은 하루 보내”와 같은 참 기분 좋은 인사말이었다. 내가 더 이상 처음 만난 낯선 이방인이 아닌, ‘함께’라는 따뜻한 기분이 들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는 인사말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기차에 탈 때 실제로 선뜻 먼저 도움을 주었던 곳은 영국이었으니, ‘영국 신사’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빅밴,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사원 등의 유명한 관광지를 보며 느낀 감탄보다는 나에게는 이처럼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소소한 부분들이 훨씬 인상 깊었으며 동시에 반성하게 만드는 여행의 참 묘미라고 생각한다.
과연 긴 세월 동안 차문화를 꽃피워 온 영국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영국의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하는 것, 선두의 영국 티 브랜드들을 경험해 보는 것, 영국의 티 클래스에 참여해보는 것의 목표를 가지고 오랫동안 가보고 싶어 했던 그곳으로 나는 갔다.



‘노팅힐’은 동명의 영화 때문에 막연하게 호감을 품고 있던 곳이었는데, 영화처럼 실제로도 큰 벼룩시장이 열려서 볼거리가 많았다. 오래된 찻잔이나 포트 등 다양한 차 도구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나에게는 더욱 유익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주말의 노팅힐 동네 카페는 앉을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차 한 잔을 주문했다. 다른 이들이 마시고 있는 음료의 비율은 6:4 정도로 홍차를 마시는 비율이 조금 더 높았다. 예전에 비해 영국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커피애호가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영국의 커피 프랜차이즈인 COSTA는 매장 수가 많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그리고 다양한 배리에이션 음료들로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추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런던 커피애호가들이 선정하는 <베스트 카페 리스트>에 매년 선정되는 소호거리의 Tap coffee(탭커피)도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커피의 향미가 일품이었고, 적당한 신맛과 가볍지 않은 무게감, 좋은 후미는 작은 커피잔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해줬다.
소호(soho) 지역에 있는 피카딜리 서커스는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광장이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거리에서 내가 현기증이 나지 않았던 이유는 대도시의 빌딩숲이 아니라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부드러운 조명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가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라 어둠이 내리면 100년이 넘은 거리상점들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런던 시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중에서 만들어낸 조명 장식이 훌륭한 조화를 만들어 내어 거대한 오브제로 느껴졌다. 이 거리에는 영국 티 산업의 선두주자인 포트넘앤메이슨 티 하우스가 있다. 1707년에 윌리엄 포트넘과 휴 메이슨이 설립한 백화점이었는데 지금은 홍차전문 브랜드로 더욱 유명하다. 영국 왕실 조달 허가증을 가지고 있으며 나폴레옹 전쟁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영국 왕실은 포트넘앤메이슨의 식료품 등을 파병 나간 영국 군인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있다. 차와 잼, 과자, 사탕, 차도구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영국에서 손꼽히는 잘 갖추어진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의 베스트 티로 ‘로열블랜드’를 추천한다. 흠잡을 데 없는 균형 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전통적으로 틴케이스등은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민트색의 메인 컬러로 대표한다. 녹차류는 그린 색의 틴케이스이다. 특히 이곳의 티스트레이너는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꼭 사고 싶은 아이템 중 하나다. 포트넘앤메이슨은 언제나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치 동화처럼 이 건물의 상층부 외벽의 시계는 매 시간마다 포트넘과 메이슨인형이 나와서 서로 마주 보고 인사를 한다.
1824년에 사업을 시작한 해로즈백화점도 현재 영국에서 가장 호화롭고 규모가 큰 곳이다. 에르메스등과 같은 명품 브랜드들도 해로즈에서 판매하는 스페셜 에디션이 있으며, 티 또한 일반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브랜드 제품도 있지만 해로즈만의 특별 상품을 출시한다.



마음에 꼭 들었던 리버티백화점은 규모가 매우 크다는 느낌은 아니며 오히려 내부의 나무 재질 때문인지 고풍스럽고 아늑한 기분이 드는 예쁜 곳이었다. 14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에도 일본 등 아시아 상품에 관심을 갖던 특정 계층을 겨냥한 상점으로 지금까지도 독특한 디자인의 상품들과 진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리버티백화점의 위층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티하우스가 있다. 역시나 이곳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스콘을 곁들여 홍차를 마시는 영국 남자들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유로움이 느껴져서 타인의 눈으로 본 나조차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매력 때문에 차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지는 것일까?
나는 전통적인 영국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티클래스를 신청했다. 런던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길리아나 선생님 댁이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클래스를 열어오신 유명한 분으로, 티문화를 안내하는 책을 쓴 경험도 있었으며, 일본의 매거진에 특집으로 그녀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중년의 길리아나 선생님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아름다웠다. 오랜 경력은 수업에서 노련함을 느끼게 했고 강의실이 아닌 실제 그들의 부엌 테이블에서 차의 역사 이야기를 듣고, 샌드위치와 쿠키, 스콘을 만들고, 거실의 테이블에서 홍차와 함께 즐기며 테이블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이 모든 과정이 완벽하고 좋았다. 그날 함께 수업을 들었던 일본인 엄마와 꼬마 숙녀 모습 또한 좋았는데 어려서부터 어린 딸에게 티문화와 에티켓을 가르쳐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밝고 예의 바른 그 소녀의 예쁜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갓 구워 나온 스콘에 부드럽고 고소한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바르고 홍차와 함께 마시는 오후는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만약 우울했다면 그 우울함을 잊어버릴 것 같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스콘을 먹어보았지만 역시 영국의 스콘이 최고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파인다이닝이었다. 코스요리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채요리에서부터 디저트까지 잘 만들어진 유서 깊은 영국의 뮤지컬 같은 요리일 것이라는 기대감과 영역을 넘나드는 식재료, 향미와 식감의 균형 그리고 창의성까지 한 번에 천천히 음미하며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식문화의 현재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나는 더욱 즐거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식의 흐름은 티의 소비성향에도 교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방문했던 런던 웨스트앤드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인 포틀랜드(portland)는 예약제로 이용할 수 있으며 이용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전체적으로 맛의 균형감이 좋았고, 익숙한 아시아 요리법이 많이 응용됐다. 이는 다른 유럽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추구하고 있는 트렌드로 보인다. 나는 이 코스요리의 마지막으로 가볍고 깔끔한 다즐링 홍차를 선택했다.



그 어떤 곳보다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로 스며들어 차와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곳은 영국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차는 매너와 에티켓, 영국인의 정서로서 지금의 영국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영국에서의 차는 기호음료로써의 측면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성’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또 어떤 변화와 발전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차문화와 산업은 언제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던 유기체와 같다.
벌써 11월이다. 유럽은 11월 중순이 넘어서면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로 분주해진다. 축제를 준비하는 것이다. 늘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면 조금은 서글프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처럼 따뜻하게 이웃과 가족과 함께 12월 한 달은 축제처럼 보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